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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이야기

향수와 후각

by 향기나는토끼 2023. 7. 8.

1. 후각

20세기 초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필요한 모든 정보를 눈과 귀로 배울 수 있어 더 이상 후각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의 연구는 이 추측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밝혀내고 있다. 후각은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진화했으며 여전히 밤낮으로 임무를 해내느라 바쁘다. 코는 냄새를 수집하지만, 경고하는 냄새나 안심시키는 향기를 맡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일은 뇌가 맡는다. 이 냄새는 안전한가? 나한테 좋은 건가? 도망칠까 말까?

2. 향수 노트
소비자가 맡는 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향수 업계는 향수가 어떤 향이 나는지 설명하는 도식인 노트 피라미드를 고안했다. 퍼퓨머리에서 향수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어보면 보통 각각 세 가지의 탑 노트(놋 드 떼뜨), 미들노트(놋 드 꿰흐), 베이스 노트(놋 드 퐁)를 알려준다. 그러나 노트는 향수의 아웃풋이지, 인풋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향사가 향을 만들기 위해 혼합물에 넣은 성분이 아닌 향수의 향이 어떤 느낌인지를 묘사한다. 향수 노트에 망고가 기재되어 있더라도, 그 향수를 망고로 만든 게 아니라는 의미다.
조향사는 발향 속도에 따라 탑, 미들, 베이스 노트를 정의한다. 탑 노트는 휘발성이 가장 높아 30분 정도 지나면 향이 사라진다. 미들노트는 최대 4시간 정도 지속되며, 베이스 노트는 8시간 이상 남아 있다.


* 노트 목록 기재형식은 아래와 같다.
  - 탑노트 : 무화과, 망고, 씨솔트
  - 미들노트 : 작약, 샌달우드, 헬리오트로프
  - 베이스 노트 : 앰버, 파촐리, 머스크

이는 결국 혼합물의 향을 맡게 된다는 뜻이지만 아마 무화과, 망고, 씨솔트 향이 먼저 풍기고, 탑 노트 향이 사라지면서 미들노트인 우드와 플라워향이 더 선명해진 다음 마지막으로 베이스노트의 잔향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퍼퓨머리의 판매 직원이 고객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설계된 향수 노트 목록이나 피라미드를 읽으면서 우리는 향수에 그 노트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보통 그렇지 않다. 노트는 환상이며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향수를 고를 때 쓸모가 있다.
무화과 노트는 무화과에서 추출한 성분이 아니라 갓 자른 무화과 잎의 향을 연상시키는 합성원료를 섞어 만든 것이다. 망고 노트는 톡 쏘는 화학향료에 시트러스 과일 에센셜 오일을 첨가해서 만든다. 씨솔트 노트는 향이 나지 않지만 아쿠아틱 스타일의 화학향료를 사용해 해변의 향취를 떠올리게 한다. 샌달우드는 에센셜 오일이지만 너무 비싸서 보통 하나 이상의 합성원료를 혼합해 대체한다.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자. 보라색을 만들고 싶은데 팔레트에 물감이 부족하다면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된다. 누군가 방금 그린 어여쁜 꽃이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면, 빨강과 파랑을 섞은 색이 아닌 '보라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빨강과 파랑이 인풋이고, 보라색이 아웃풋이다.
따라서 ‘이 향수에 작약이 들어갔나요?’라고 묻는다면 향수를 만들 때 천연 작약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대신 '천재적인 조향사가 작약 향이 떠오르는 어떤 개별적인 원료를 사용했나요?'라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

3. 왜 우리는 어떤 향기를 다른 향기보다 더 좋아할까?
우리는 좋고 싫음을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운다. 이를 접근-회피 반응이라고 한다. 소나무 향은 주로 세정제에 사용되는데, 영국사람은 그게 '화학물질' 냄새라고 생각해서 소나무 향이 나는 음료나 음식을 기피한다. 사실 그 세정제는 상쾌한 소나무향을 풍기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떤 향수는 맡으면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느꼈던 물건이나 사람이 떠올라 이끌리기도 한다. 아니면 어린 시절 자신의 마당에 공을 찼다고 야단을 치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냄새가 생각나 그 향수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 있지만, 향기는 그보다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4. 내가 뿌린 향수를 다른 사람은 맡는데 나는 맡을 수 없는 이유
인간의 후각 시스템은 생존과 직결되는 정보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향수를 주기적으로 뿌리면 뇌는 그 향에 대한 후각 정보를 무시한다. 그게 안전하다고 학습했기 때문에 뇌는 향수 냄새를 분석하는 대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그럼, 여기 걱정할 만한 건 없어.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자, 이제 집중해 보자! 근처에 나를 잡아먹을 만한 위험한 게 있나?'
이를 후각적 습관이라고 하며, 향수를 뿌린 날 친구들이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할 때 '그래? 뿌린 지 한참 된 것 같은데?’라고 대답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향수를 다시 뿌리기 전에 다른 사람과 확인해 보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안을 냄새로 가득 채우며 향수의 세계에서 '오버스프레잉'으로 알려진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운전하면서 음악의 볼륨을 한껏 높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뼛속까지 울리게 만드는 것과 맞먹는 끔찍한 일이다.
이것은 향수를 여러 개 돌려가며 사용할 좋은 핑계가 된다. 뇌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익숙해지므로 공중에 퍼지는 향기를 맡는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결국 끊임없이 자신을 놀라게 해야 한다.

5. 계절에 따라 다른 향수를 사용해야 할까?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는 리치한 향수를 내버려 두다가 해가 일찍 지기 시작하고 추워지는 계절이 오면 스파이시한 향수에 손을 뻗는다. 반대로 상쾌한 그린 시트러스 향수는 쌀쌀한 날씨에는 너무 차갑게 느껴지지만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는 완벽하다. 자신이 원하는 향수를 뿌리고 싶을 때 뿌리는 것 말고 계절에 따라 지켜야 할 규칙 따윈 없다.

6. 나만의 향수를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시향 해보는 것이다. 시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믿을 만한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정보를 구해보자. 역설적이게도 향수 냄새를 맡는데 가장 곤란한 장소 중 하나는 바로 퍼퓨머리 안이다. 궁궐 같은 곳에 들어가면 이미 가득 찬 향기가 뇌를 강타하고 강렬한 향기에 취한 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과 함께 전달하는 후각 정보의 양을 줄인다. 거기에 몇 가지 향수를 시향하고 나면 뇌는 로그오프 상태가 되어 시향지에서 나는 어떤 냄새도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사실 코는 모든 냄새를 맡고 모으느라 정신없이 바쁘지만, 뇌는 어떤 정보에도 집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냄새를 제대로 맡아보려면 시향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문을 나서는 순간 뇌는 새로운 위험이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주변의 공기를 재설정하고 테스트한다. 그래야 시향지의 향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느 정도 향을 맡았다면 이제 같은 과정을 시향지 대신 피부에 뿌려보고 반복해 보자. 매장 직원이 커피 원두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면 후각을 다시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득할 수도 있지만 결국 향을 하나 더 맡게 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맡는 향을 바꾸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가장 좋은 방법은 바깥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밖에서 향수 냄새를 맡고, 선택한 다음 다시 들어가자.
더불어 퍼퓨머리에서 시향하고 마음에 드는 향수를 찾았다면 그곳에서 향수를 샀으면 한다. 시향은 매장에서 하고 온라인에서 구입하면 오프라인 퍼퓨머리가 점점 설 곳을 잃어 간다. 누군가의 퍼퓨머리에서 자신을 향기로 감싸는 즐거움을 누렸다면, 힘들게 번 돈을 그들과 나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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