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향수 산업은 1870년대 무렵 과학자들이 새로운 합성 물질을 만들어 선사 시대부터 존재해 온 식물성 원료와 동물성 원료를 베이스로 한 향수에 첨가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향수의 변천과 향수를 뿌린다는 의미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1. 향수의 기원
사람들이 언제 처음으로 머리와 몸에 꽃과 송진으로 만든 향유를 바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언제부터 앰버그리스(용연향)나 머스크(사향)를 잘게 갈아 약초 가 담긴 단지에 넣기 시작했는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향수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화학자가 증류법으로 향수를 만들었다는 가장 오래된 문서 기록은 3000여 년 전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바빌로니아 메소포타미아에서 찾을 수 있다. 타푸티(Tapputi)라 불리던 화학자는 왕궁에서 작업감독 벨라테칼림(Belatekallim)으로 일하면서 꽃, 허브, 씨앗을 사용해 향수를 만들었다. 또한 4000년 전에 사이프러스섬에 향수 공장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되었는데, 몇 백 개나 되는 식물성 아로마 추출용 증류 기구도 함께 있었다.
2. 향수의 첫 용도
역사 기록에 따르면 향수는 몇 천 년 동안 질병을 예방하고 몸 ㅣ을 치장하는 데 쓰였다. 곪거나 썩은 상처에서 풍기는 악취가 지독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은 냄새가 질병을 물리친다고 믿었고,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에센셜 오일은 항바이러스 · 항균 · 항진균 작용을 한다. 뛰어난 향수는 건강한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었고, 좋은 냄새는 건강의 척도였다.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역사상 잘 알려진 향 수 사용자였다. 평균적인 외모였지만 향기로운 계략으로 로마의 통치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그리고 이어서 그의 장군인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장미로 만든 향수로 관능적인 매력을 내뿜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따금 누군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랑의 묘약이 일확천금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은밀한 향수 제조법을 재발견했다고 주 ㅣ장하기도 한다.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유혹의 도구로서 향수는 지난 수천 년간 분명히 영업 수완의 한 부분이었다.
유혹하기 위해 향수를 사용한 또 다른 기록은 구약성서의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혹은 노래 중의 노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솔로몬의 노래는 2200 ~ 3000 년 전에 쓰였고, 가끔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제외되기도 했다.
'사랑하는 님은 내 가슴 사이에 품은 향 주머니와 같고', 이는 젊은 여자들을 저항할 수 없게 무너뜨린 향수를 묘사한다. 2000년이 지나서도 향수 브랜드는 여전히 그들이 만든 사랑의 묘약에 연인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힘이 있다고 고객을 설득한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그저 좋은 향기를 맡는 사치를 부리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는 것은 엄청난 부자만 가능한 일이었다. 향수를 만들던 약제상은 성서의 세 가지 선물 중 금보다는 프랑킨센스(유향)와 미르(몰약) 이를 받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의 피부에서는 라브다넘, 벤조인, 미르, 프랑킨센스, 송진에 꽃과 스파이스를 첨가하고 향을 유지하기 위한 올리브와 아몬드 오일에 담가 우려낸 식물 수지와 발삼 추출 물로 향긋한 내음이 풍겼다.
3. 중세 시대 : 에센셜 오일의 등장
페르시아 제국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븐 시나는 현재 우리가 에센셜 오일이라고 부르는 원료를 가공하는 증류 추출법에 대한 책을 썼고, 이븐 시나의 추출 방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재능이 뛰어났던 이븐 시나는 998년 18세의 나이로 의료자격증을 땄고, 1025년에 5권으로 구성된 의학서(The Canon of Medicine)를 집필했다. 이븐 시나가 최초로 식물에서 치료용 에센셜 오일을 추출한 사람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서양에 에센셜 오일 추출법을 소개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향수의 용도나 대상은 지금과 매우 달랐고, 전 세계 인구 중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될 만큼 굉장히 비쌌다. 향긋한 토닉은 몸을 씻거나 질병을 고치는 약으로 쓰였지만, 타고난 매력과 부를 과시하는 용도이기도 했다. 중세 귀족이 지나치는 사람에게 자신의 향기가 건강과 부를 상징하리라 예상하며 로즈메리와 미르향이 나는 아몬드 오일로 몸을 씻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세시대 초기 민간의학과 수도원은 유사한 전통을 통해 자연 치유 요법에 대한 지식과 재료를 공유했다. 의료용 허브를 재배하면서 때때로 먹어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거나 몸에 발라보기도 했다. 수도원의 수사들은 알코올 증류법으로 식물 에센스를 혼합해 허브 팅크를 제조했다. 아로마 에센스와 약제는 곧 같은 말이었으며 내면과 외면의 청결함, '4 체액'의 균형, 악령 퇴치 등을 위해 사용되었다. 특권층의 표식과도 같은 쾌적한 향기는 덤이었고, 좋은 냄새는 절대 혐오감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식물 추출물은 희귀하고 가격이 비싼 데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을 돕는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교회에서는 사용을 금지하려 하기도 했는데,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종교 지도자들은 의료용 약제로 쓰는 것을 허용했고, 악보다는 선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4. 오 드 콜로뉴, 가장 오래된 향수
오드 콜로뉴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향수 유형으로 유럽 수도원이 습득한 지식을 통해 발전했다. 수사들은 기술과 자원을 이용해 신체를 정화하는 토닉을 제조하고 판매하면서 공동체를 지원했다. 가장 초기에 알려진 치료제 중 하나는 로즈메리 추출물로 만든 헝가리 여왕의 향수로,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헝가리의 이사벨라 여왕이 이 향수로 건강과 아름다움을 되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간혹 주인공이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바뀌기도 한다. 14세기쯤부터 이어진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은둔자 거나 연금술사였던 수사들의 창작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아쿠아 미라빌리스(aqua mirabilis ; 기적의 물)로 불렸던 이 토닉은 마시거나 몸을 씻는 데 사용되었고, 때때로 음료이면서 동시에 세정제이기도 했다. 결국 리큐어와 코디얼은 토닉에서 떨어져 나와 별도의 음료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세정제로 사용하던 토닉은 쾰른워터(Kolnische wasser) 혹은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 ; 독일의 도시 쾰른에서 온 물이라는 뜻)로 알려진 시트러스 오일 베이스의 향수로 발전했다.
레몬, 오렌지, 베르가못은 독일에서 재배되지 않았는데 왜 이름에 ‘콜로뉴’가 붙었을까? 그 기원은 이탈리아 수도원의 허벌리즘에 있다. 이탈리아 수사들은 시트러스 과일을 재배했고, 그들의 허브 치료제 비법은 제조법이 수정되면서 더 완벽해지고 지역화와 브랜드화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독일의 쾰른이 마케팅 경쟁에서 승리했고 명성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제는 흔하게 사용되어 도시 이름과 상관없이 남성용 향수를 의미하는 ‘콜로뉴’라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