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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이야기

향수 종류(우드 – 소프트 앰버)

by 향기나는토끼 2024. 9. 12.

 

SOFT AMBER

 

 

1) 야칭

- 데따이으

- Yachting by Detaille

- 요트를 타고 다다른 칸의 항구

- 조향사 미공개

- 야칭은 구식이다. 선체는 나무로 만들었고 무거운 삼베 돛이 달려 있다. 하얗게 빛나는 억만장자의 요트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데따이으는 이게 남성용 향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속박 따위는 벗어던지고 출생 신고서에 성별이 뭐라고 쓰여 있든, 야칭이 선사하는 스파이스 플로럴 우드 노트를 즐겨보자. 처음 몇 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는 현대적인 남성용 향수와는 달리 이게 우드 계열 향수라는 사실을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재스민과 제라늄의 물결 위를 떠다니는 스파이시 플라워, 카다멈, 생강 노트가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차분히 가라앉고 나면 시더우드로 만든 갑판 아래 구아이악우드와 베티베르의 모닥불 향기가 피어오른다. 이 모든 게 요트와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그리 중요하진 않다.

 

 

2) 리콰리스 베티베르

- SP 퍼퓸

- Liquorice Vetiver by SP Parfums

- 미지의 영역으로 떠나는 모험

- 조향사 스벤 플리츠콜레이트

- 스벤 플리츠콜레이트의 향수는 말로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주 세심하고 꼼꼼하게 만들었지만 다정한 독학자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태도에 향수도 그처럼 상냥할 거라고 속으면 안 된다. 그의 향수는 미지의 영역으로 떠나는 힘찬 모험과도 같다. 리콰리스 베티베르는 2016년 출시되었고, 그가 가을 숲에 비치는 햇빛이라고 묘사한 깊고 진한 모시 베티베르 향취를 지니고 있다. 시트러스 과일과 리콰리스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다가, 이내 늑대가 사는 깊은 숲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로 이끈다. 여러분이 정말 인디 향수가 부리는 기교의 끝을 보고 싶다면 SP 퍼퓸의 샘플 패키지를 사보자. 다시는 향수를 같은 방식으로 보지 못할 것이다.

 

 

3) 샌달우드 콜로뉴

- 지오 F. 트럼퍼

- Sandalwood Cologne by Geo. F. Trumper

- 불가사의한 가격의 샌달우드

- 조향사 미공개

- 고풍스럽고 품위 있는 신사 클럽의 나무가 깔린 바닥, 가죽으로 만든 소파, 수십 년 동안 배인 시가 연기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향수가 많다. 그리고 이름을 샌달우드라고 짓긴 했지만 트럼퍼의 콜로뉴도 그중 하나다. 인도산 샌달우드 말고도 즐겁게 감상할 만한 향기가 아주 많다. 상쾌한 허브와 시트러스 과일로 시작해서 플로럴 부케 노트가 지나가면 우아한 응접실에 편안히 앉을 차례다. 트럼퍼의 향수는 원래 런던 바버샵에서 남성을 위한 애프터 쉐이브용으로 블렌딩한 것이다. 이 바버샵은 상류층만 출입할 수 있는 클럽에서 가죽 구두를 신은 신사들이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있다. 바버샵 손님은 샌달우드 콜로뉴의 향기를 즐기며 한가롭게 거닐다 온갖 냄새가 뒤섞인 거리로 사라진다. 트럼퍼는 따로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입지가 탄탄하고, 향수 포장은 기품이 느껴지면서도 수수하다. 그 결과 트럼퍼 향수의 가격은 향기만큼이나 유쾌하고 매력적이다.

 

 

4) 스태쉬

- 사라 제시카 파커

- Stash by Sarah Jessica Parker

- 니치 향수의 탈을 쓴 가성비 갑

- 조향사 클레멘트 가바리, 로랑 르 게르넥

- 스태쉬가 너무 많은 경계를 허물며 나아가는 바람에 향수 업계 내부에서는 큰 감동이 일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금 혼란스러워했다. 떼지어 날아다니는 시트러스와 허브가 더해진 스파이시 앰버 우드 향수는, 라티잔 파퓨미에르의 중기 작품들과 함께 선반 위에 즐겁게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영국에서는 체인점 매장에서만 살 수 있는데, 혼란스럽고 당황한 판매원들이 스태쉬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향수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매장 안에 있는 다른 향수는 죄다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연예인의 이름을 딴 브랜드 향수는 항상 향수병에 붙어 있는 사진 속 유명인의 성별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남녀 공용 향수는 오히려 더 비싸고 쉽게 사기가 어렵다. 스태쉬를 만든 조향사들은 니치 퍼퓨머리, 디자이너 향수, 연예인 향수를 조향했던 경험이 있었고, 마침내 여기서 기절초풍할 만한 놀랍고 충격적인 향수를 탄생시켰다. 사라 제시카 파커는 향수 제조에 적절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모든 향수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특히, 가격이 정말 싸다.

 

 

* 참고

<길을 벗어날 줄 안다는 것>

스파이시 우드는 독창적인 노트로, 약간의 향신료 내음과 특이한 나무 향이 섞여 조금 별난 구석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스태쉬는 평범함을 벗어난 향기를 맡기 위해 비싼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증거다. 샌달우드 콜로뉴 역시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트럼퍼의 색다른 접근방식 덕분에 익숙한 단일 나무 향을 다룬 부분이 아니라, 여기 룰 브레이커 집단에 넣을 만했다. 세상을 뒤집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때 하나 골라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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