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LORAL
17) 파우더 베일
- 밀러 해리스
- Powdered Veil by Miller Harris
- 베일 뒤에 숨겨진 건 비밀일까, 정숙함일까? 아니면 둘 다?
- 조향사 매튜 나르딘
- 파우더 베일은 이름 그대로다. 얇은 면사포 아래 감추어진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 루바브 노트는 햇빛 가득한 날의 진홍색 제라늄과 함께 영국 시골 정원의 배경을 떠오르게 한다. 꽃내음을 기대하는 게 맞겠지만 파우더 베일은 일반적인 결혼식 장미 부케를 생략하고 대신 난초의 우아함과 산뜻한 공기의 산들바람을 결합해 본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는 야외의 느낌이 든다. 투명한 파우더 베일은 보송보송한 향기로 자꾸 시선이 가게 하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앰버와 샌달우드가 포근하게 신부를 안아주며 마무리된다.
18) 델리나
- 퍼퓸 드 말리
- Delina Parfums de Marly
- 황금빛 장미, 포근한 광채
- 조향사 쿠엔틴 비쉬
- 루이 15세는 자신의 말이 경주에서 이길 때마다 새로운 향수를 요청하는 경향이 있었고, 2017년 설립된 니치 향수 하우스인 퍼퓸 드 말리는 그런 향락주의에서 영감을 얻었다. 델리나는 바로크 스타일의 분홍색 꽃잎이 그려진 병에 양치기 소녀처럼 앙증맞게 담겨 있다. 프루티와 플로럴 노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장밋빛 루바브 향이 반짝이게 한다. 과즙이 가득한 작은 물방울이, 욕조 안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환상적인 연못의 향기와 함께, 작약과 장미의 향기로운 바다로 떨어지며 흩어진다. 포근한 앰버와 바닐라가 금빛으로 빛나며 깊어가는 밤으로 마무리를 짓지만, 여기서 진짜 스타는 루바브 노트다. 루바브의 장미 향이 감도는 페어와 딸기 어코드는 오랫동안 머물며 델리나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19) 토카드
- 로샤스
- Tocade by Rochas
- 눈부신 플로럴 바닐라
- 조향사 모리스 루셀
- 1994년 출시된 토카드는 멤피스 그룹 디자이너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활기차고 알록달록한,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병에 똑같이 장난기 가득한 향수를 담았다. 당시의 프루티 플로럴 노트가 주는 즐거움은 리뉴얼을 거치며 많이 사라졌지만, 모리스 루셀의 틀을 깨는 독특함은 여전하다. 그가 만든 향수를 뿌릴 때마다 느끼겠지만, 이번에는 장미와 바닐라 노트로 흠뻑 적시고 베르가못 향기가 분수처럼 쏟아진다. 평범한 프루티 플로럴 향수에 충분히 만족하며 안전함을 선호하는 대중과 멀리 거리를 두고, 로샤스와 루셀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하며, 가장자리에 가까워질수록 균형을 잡고, 오랫동안 머물며 활력이 넘치는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20) 비잔스
- 로샤스
- Byzance by Rochas
-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알싸한 매력
- 조향사 알베르토 모릴라스
- 비잔스는 1987년, 그 시대에 걸맞은 짙은 사파이어와 금박을 걸치고 등장했다. 입생로랑의 오피움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두 배는 더 무성한 소문과 함께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인기 있는 스파이시 앰버 계열 향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고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마이클 에드워즈의 참고서인 Fragrances of the World(세계의 향수)에 사라진 향수로 실렸다. 한껏 부풀린 어깨와 머리처럼 비잔스도 유행이 지났고, 가장 강렬한 스파이시 앰버 향수는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왔다. 물론 예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새로운 버전은 황금빛이 감도는 앰버라기보다 옅은 푸른색에 가깝다. 하지만 여전히 비누 거품이 일고, 알싸한 스파이스 노트를 흩뿌리며 강렬한 플로럴 부케가 섞인 짙은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마치 멋쟁이 이모가 20년 동안 유람선을 타고 세계를 여행하다 돌아온 것처럼, 약간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사랑스럽다.
21) 톰 3, 레트르
- 쟈딕 앤 볼테르
- Tome 3, L'Étre by Zadig & Voltaire
- 설명서는 저리 치우고 일단 향기를 맡아봐
- 조향사 미공개
- 3권, 존재. 톰 컬렉션은 쟈딕 앤 볼테르 매장과 웹사이트에서만 살 수 있다. 인디 퍼퓨머리가 향수를 고르기 전 충분한 시향을 해볼 수 있도록 종종 테스터 세트를 판매하는 것처럼, 쟈딕 앤 볼테르도 그랬으면 좋겠다. 블라인드 구매는 언제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 향수는 ‘어른의 모호함을 높인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다소 무의미한 설명이며, 이 향수는 더 많은 수식어가 붙을 자격이 있다. 적절한 앰버 라브다넘 베이스와 캐시미어처럼 부드러운 장미 향이 가득하다. 다른 장미 앰버 향수보다 돋보이는가?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 향수는 남사친으로 시작해서 남친이 되는 그런 향기다.
* 참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앰버의 매력> 여기서 소개한 플로럴 앰버 향수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정열적인 관능미부터 귀여운 커트머리 소년 같은 중성적인 매력까지 모두 아우르는 가계도를 갖고 있다. 플로럴 앰버나 발삼 앰버 향수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모두 기본적으로 바닐린이 들어간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바닐린은 행복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게 케이크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단지 앰버 계열 향수의 지속적인 인기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