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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이야기

향수 종류(플로럴 – 프루티#01)

by 향기나는토끼 2023. 7. 20.

◈ FRUITY

1) 인 러브 어게인

- 입생로랑
- In Love Again by Yves Saint Laurent
- 여름 과일과 후끈한 열정
-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 1990년대 후반 블랙커런트 향수가 등장했다. 블랙커런트 새싹의 톡 쏘는 그린 노트는 항상 있었지만, 새로운 카시스 향료와 만나 더 풍부한 과일 향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오리지널은 박스와 뚜껑에 쨍한 색감과 금색 프린트로 장식한 할리퀸 체크무늬를 새겨 대담함을 표현했다. 화려한 색조를 띤 하트 모양의 펜던트도 주었다. 향수를 뿌리고 무료로 받은 펜던트를 착용한 채 어정쩡한 데이트에 나타난다면 아직 준비가 덜 된 상대에게 먼저 사랑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가 사랑에 빠진 건 머뭇거리는 상대가 아니라 향수의 풍부한 과일 향인데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프레 향이라고 하고 그게 맞지만,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다. 비록 이제는 깔끔한 베이지색 향수병과 상자에 담겨 있을지라도, 지금까지 우리 곁에 머물러준 몇 안 되는 놀라운 1990년대 프루티 플로럴 향수 중 하나다. 붉은색 과일, 장미와 머스크 차고 넘치는 사랑! SM


2) 펄프

- 바이레도
- Pulp by Byredo
- 켄싱턴첼시 시장의 과일 가게
- 조향사 제롬 에피네르
- 하루가 저물어 갈 때쯤 시장에서 떨이로 파는 과일을 봉지째 살 수도 있고, 비싼 사과를 사서 한 알씩 정성스레 포장해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바이레도 향수는 택시에 타는 사과 쪽에 가깝다. 펄프는 프루티 플로럴 계열 향수 중 단연코 최고급 라인이다. 이 향수를 꼭 가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가끔 카드를 긁고 다음 달의 내가 감당할 만하다면 망설이지 말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과, 블랙커런트, 베르가못 노트가 폭발적으로 쏟아지며 온몸에 휘감긴다. 내게는 강렬한 자몽 스플래시도 느껴진다. 비싼 과일을 파는 아저씨는 노릇하게 볶아낸 따뜻한 헤이즐넛과 풍성한 흰색 꽃다발도 함께 팔고 있고 과일이 담긴 좌판대 상자는 막 깎아낸 시어우드 판자로 최근에 새로 만들었다.

3) 자도르

- 디올
- J'Adore by Dior
- 접근 가능한 우아함
- 조향사 칼리스 베이커, 프랑수아 드마시
- 자도르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TV 광고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빛나는 모델은 향수에 쉽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다. 때문에 스타일리스트 베스트 뷰티 어워드의 두 부문을 심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 병이 스튜디오에 도착하기 전까지 솔직히 나는 자도르에 관심이 없었다. 실수였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향이라니! 프루티 플로럴의 보배로다. 사랑받는 디올의 디오렐라와 애증의 쁘아종을 자연스럽게 계승한 자도르는 시프레부터 앰버, 머스크에 이르기까지 꽃과 과일을 자신감 넘치고 우아하게 조합하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복숭아 베르가못, 자두빛 꽃, 달달한 머스크 우드 노트를 처음으로 선보인 현대 향수다. 광고를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4) 트윌리 데르메스

- 에르메스
- Twilly d'Hermès by Hermès
- 생각보다 더 세련된
- 조향사 크리스틴 나이젤
- 트윌리는 에르메스가 만든 여러 종류의 길고 얇은 실크 스카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향수병 목에는 자그마한 스카프가 매여 있다. 하지만 귀여운 병에 담긴 향기는 신선한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에르메스는 생강, 투베로즈, 샌달우드 향이 난다고 하는데, 부담스럽거나 싫은 향이 있다고 해도 개의치 말자. 어느 노트도 특별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니 말이다. 다시 말해, 천재적인 조향사의 예술적인 기교란 의도적이지 않은 한 어떤 노트도 돋보이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한없이 순수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브랜드 혈통에 걸맞게 고급스럽다. 스파이스보다 프루트 노트가, 플로럴보다 바닐라 노트가, 샌달우드보다 머스크 노트가 더 많이 느껴진다. 아름답게 어우러진 이 모든 노트의 향연에 앙증맞은 중절모까지 있다니!

5) 샹스 오 땅드르

- 샤넬
- Chance Eau Tendre by Chanel
- 핑크공주
- 조향사 자크 폴주
- 샹스 오 땅드르는 머리에 묶은 핑크 새틴 리본처럼 전형적인 어여쁨을 보여준다. 자몽 탑노트가 반짝이는 상쾌함과 명랑함을 선사하는 가운데 마르멜로는 장난기 가득한 과일의 앙증맞은 아다지오처럼 페어와 사과 어코드를 추가한다. 핑크색 새틴 슬리퍼를 신은 발레리나에게 선물한 로맨틱한 꽃다발 같은 특유의 깔끔한 플로럴 향이 느껴진다. 재스민, 아이리스, 동화 같은 히아신스 꽃잎이 종이꽃가루처럼 흩날린다. 뒤에서 춤추는 불빛처럼 반투명하게 일렁이는 앰버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계속 이어지는 핑크 새틴 리본의 베이스 노트와 함께 발레 공연의 막을 내린다.

6) 트레조

- 랑콤
- Trésor by Lancôme
- 완벽한 보물
- 조향사 소피아 그로스만
- 랑콤의 트레조는 1990년 천재적인 조향사 소피아 그로스만의 손길로 탄생했다. 복숭아껍질의 벨벳 같은 촉감이 느껴지는 보드랍고 포근한 프루티 플로럴 노트와 함께, 꽃봉오리와 진한 바닐라가 자연 그대로의 달콤함을 선사한다. 살구꽃과 깊고 붉은 장미가 만드는 여성스러운 조합은 향기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조화롭다. 마음속에 붉게 물든 복숭아 껍질로 만든 옴브레 꽃잎의 장미가 떠오른다. 꽃잎은 가을에 지는 낙엽처럼 아늑하고 따스하게 향기를 감싸주는 샌달우드 베이스로 떨어진다. 트레조는 이름에 딱 맞는 영원한 보물이다.

7) 나이아스

- 삼마르코
- Naias by Sammarco
- 거절할 수 없는 압도적인 상냥함
- 조향사 지오바니 삼마르코
- 우리는 손에 넣기 어렵고 값이 좀 나가는 향수를 소개해야 할지 말지 망설였지만, 나이아스는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지오바니 삼마르코는 아르티장으로 너무 독특한 개인적 취향과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소량의 향수를 수작업으로 만든다. 나이아스는 한 사람을 위한 헌사와도 같아 향수를 뿌리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사람은 아름답고 상냥한데, 다 섬세해서 향기를 맡을수록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든다. 지오바니는 신선한 과일과 '바이올렛의 보랏빛 아우라'를 지닌 꽃향기의 옅은 안개라고 그의 향기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참고

<금단의 과실> 베르사유의 오스모테끄(향수 업계의 향기 도서관)에서만 맡을 수 있었던 향수가 1916년 제조법 그대로 복원되었다. 바로 조향사 앙리 알메라스가 레 퍼퓸 드 로진느를 위해 만든 르 프룻 디펜두다. 이 향기를 맡아보기 전에는 프루티 플로럴 계열 향수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루티 플로럴은 사실 1920년대에도 유행했다. 사치와 향락으로 물들었던 1920년대가 1930년대 경제 불황에 자리를 내주면서 사라졌다. 향수는 물결처럼 다가오며, 프루티 플로럴 향수는 20세기 후반 다시 큰 파도에 몸을 싣기 시작해 여전히 해안을 강타하고 있다. 멋진 프루티 플로럴 향수는 톡 쏘는 상큼함과 달콤함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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