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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이야기

향수 종류(플로럴 - 알데히드)

by 향기나는토끼 2023. 7. 22.

◈ ALDEHYDES

 

1) NO 5

- 샤넬
- NO 5 by Chanel
- 전설
-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
- 샤넬 NO 5는 정말 대단한 향수고, 그만큼 향수를 둘러싼 소문도 많았다. 합성 알데히드를 함유한 최초의 향수가 아닌데도 향수 애호가들 사이에 이 속설은 이미 신화처럼 자리를 잡았다. 합성 알데히드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존재하고 있었지만, 샤넬 NO 5는 당시 인기를 끌던 다른 향수들보다 알데히드가 더 많이 들어갔다. 일랑일랑, 재스민, 장미가 주역을 맡고 시트러스, 우드, 발삼, 머스크, 그리고(1921년에만) 상당량의 시벳 노트가 가미된 플로럴 부케를 사용한다. 제조법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매년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지금의 NO 5는 100년 전보다 더 맑고 가벼워진 데다 상대적으로 가격도 훨씬 저렴해졌다. 퍼퓸, 오드 퍼퓸, 오드 투알레트 버전이 있고 온라인에서는 종류별 장단점에 대한 격론이 벌어진다. 살면서 적어도 하루는 NO 5를 뿌려봐야 한다. 그리고 격론에 합류해 보자.

2) 아르페쥬

- 랑방
- Arpège by Lanvin
- 조화로운 노트가 선사하는 섬세한 연주
- 조향사 폴 바셰, 앙드레 프레이스, 위베르 프레이스
- 랑방 아르페쥬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향수라서 매일같이 뿌린다. 1927년 출시되었고, 향수 탄생의 장본인인 마리 블랑쉬 드 폴리냐크가 음악 용어인 '아르페지오'의 프랑스어로 이름을 붙였다. 장미, 재스민, 카네이션, 복숭아 노트가 여는 시작은 과하게 들릴 수 있지만, 모두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여성스러운 오프닝을 따라 은방울꽃, 동백꽃, 허니서클, 아이리스 꽃잎이 차례로 하늘 높이 날아올라 흩날린다. 플로럴 노트가 활짝 피고 나서 점점 흐릿하게 옅어져도, 파우더 향과 복숭아 비누 같은 잔향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는 샌달우드, 오크모스 파촐리 베이스 노트는 내가 원하는 시프레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웨일즈의 집에서 빨래를 개고 있을 때조차 아르페쥬는 나를 1927년의 파리로 데려간다.

3) 리브 고쉬

- 입생로랑
- Rive Gauche by Yves Saint Laurent
- 반짝이는 메탈릭 플로럴
- 조향사 자크 폴주, 미셸 하이
- 리브 고쉬는 전형적인 파리지앵이다. 우선 파리 센강 좌안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리고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장난기 많은 프랑스 여성들이, 향수병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길가 카페에서 불운한 남성들을 놀리는 상징적인 광고가 있다. 마지막으로, 향기 그 자체다. 리브 고쉬를 뿌리면 은빛의 경쾌함이 뿜어져 나와 화려한 플로럴 부케 위로 폭포처럼 쏟아진다. 제라늄과 은방울꽃 노트가 주인공 자리를 두고 다투는 동안 시크하고 스타일리시한 오리스 노트가 나타나 점잖게 둘을 말리고는 싱그럽고 촉촉한 베티베르 베이스노트 뒤로 사라진다. 잠자리에 들 때쯤이면 검고 파란 스카프에는 머스크 노트의 잔향이 남아 있다.

4) 레망

- 코티
- L'Aimant by Coty
- 가성비 갑 알데히드 플로럴
- 조향사 뱅상 루베르
- 코티의 레망(자석이라는 뜻)은 알데히드 향수의 상징과도 같은 샤넬 NO 5의 명성에 힘입어 3년 뒤인 1924년 출시되었다. 복숭아, 비누, 파우더 향이 어우러져 상쾌한 푸른 하늘이 펼쳐진 봄날 같은 오프닝은 텁텁한 난초, 도도하고 강렬한 재스민 노트와 함께 사방이 장미로 뒤덮인 뜨거운 여름으로 빠르게 넘어간다. 보송보송한 복숭앗빛 파우더 구름이 장미와 재스민 향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여성스러운 머스크와 바닐라 노트의 매끄러운 솔이 어깨를 어루만지며 마차가 집에 닿을 때까지 꽃내음을 남겨둔다.

5) 블루 그라스

- 엘리자베스아덴
- Blue Grass by Elizabeth Arden
- 켄터키 평원에 대한 오마주
- 조향사 게오르그 푸치스
- 1934년에 출시된 블루 그라스는 아직도 인기가 많다. 후기를 보면 할머니와 이모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이 시대에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가격의 오드퍼퓸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며, 오프닝의 알데히드 노트는 햇빛 아래 널어놓은 빨래나 아침에 훅 밀려드는 신선한 공기처럼 상쾌하다. 라벤더와 허브 노트가 만나 콜로뉴 같은 경향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고전적인 정원의 꽃을 모두 품에 모아 깔끔하면서도 가득 찬 꽃내음을 뽐낸다. 진홍색 제라늄은 압도적이다. 줄기의 촉촉하고 싱그러운 내음과 함께 블랙 페퍼, 라벤더, 레몬 노트의 꽃잎이 번갈아 가며 강렬한 장미 향을 선사한다. 블루 그라스는 비누 향기가 오래 지속되는 클래식 향수로 '상쾌한 알싸함'이라는 단어의 전형을 보여준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블루 그라스를 땀이 찬 가슴골에 뿌리면 그만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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