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프트 앰버
향수에서 클래식 앰버는 바닐린과 록 로즈에서 추출한 수지인 라브다넘의 혼합물을 의미한다. 19세기 중반까지 향수 제조소에서 매끄럽고 황금빛이 감도는 보석처럼 값비싼, 화석화된 나무 수지의 결정질 호박을 향수의 고정제로 사용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듯 그런 사치는 부유한 계층만 감당할 수 있었다. 합성 바닐린이 등장하면서 향수 화학자들은 바닐린을 라브다넘과 혼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천연 바닐라 향에 가깝거나 더 진한 향조를 가진 물질을 만들었다. 합성원료의 사용으로 생산 비용이 낮아진 앰버계열 향수는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50년 전 광고 속 앰버 향수는 동양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희귀하고 값비싼 원료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향수 업계의 누구도 앰버향수의 바닐린이 독일의 홀츠민덴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 AMBER
1) 엠버 페티쉬
- 구딸
- Ambre Fétiche by Goutal
- 우리가 앰버향에 바라는 모든 것
- 조향사 이자벨 도옌
- 앰버 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면, 당장 이 향수를 파는 퍼퓨머리를 찾아야 한다. 이자벨 도옌의 앰버 향은 너무 정확해서 다른 앰버 향수의 향조를 측정하는 척도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라브다넘, 바닐라, 프랑킨센스, 벤조인, 파촐리 등 모든 노트가 자로 잰 듯 정확한 비율로 들어가 있다. 엠버 페티쉬는 2007년 출시된 레 오리엔탈리스트 트리오 컬렉션 중 하나로, 모두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다른 병에 담겨 출시되었지만, 향기는 거의 같다. 모든 사람이 향기를 공유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했던 시절의 화려한 마케팅인 것이다. 트리오 컬렉션의 다른 두 향수 미르 아덴과 앙상 플랑브와양도 진지하게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지금은 새로 디자인한 병에 담겨 있고, 브랜드는 아닉 구딸이 아닌 구딸이다. 선반에 앰버 향수 하나만 들어갈 자리가 있다면, 엠버 페티쉬가 최종후보 목록에 올라야 한다.
2) 앰버 앱솔루트
- 톰포드
- Amber Absolute by Tom Ford
- 두둑한 지갑을 위한 앰버
- 조향사 크리스토프 로다미엘
- 향수 커뮤니티에는 '덤 리치‘ 향수라는 용어가 있다. 오늘 어떤 향수를 뿌릴지 고민하다 15분쯤 지나 약속에 늦었을 때 결국 아무거나 후다닥 뿌리고 나오는 향수를 뜻한다. 중요한 건, 그렇게 뿌린 덤 리치 향수가 절대 실망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톰포드의 앰버 앱솔루트가 그렇다. 질감을 표현하는 독특함이 다른 앰버 향수와의 차이를 만든다. 풍부한 라브다넘 노트가 시럽처럼 녹진하게 흐르고, 따뜻한 레진이 즐겨 입는 스웨터보다 더 포근하게 감싼다. 희미한 물결처럼 구불거리며 퍼지는 인센스 노트는 안에서부터 밝게 빛나는 알싸한 향신료에 광채를 더한다. 정신없이 막 뿌리고 나온 덤 리치 향수라도 이보다 더 지적이고 세련된 매력을 선사하는 향수는 찾기 어렵다.
3) 옥스퍼드
- 루스 마스텐브룩
- Oxford by Ruth Mastenbroek
- 지적인 매력을 가진 영감을 불어넣는 앰버
- 조향사 루스 마스텐브룩
- 옥스퍼드 대학은 조향사 루스 마스텐브룩의 모교이며, 이 향수는 오늘날의 루스를 만든 대학 시절 기억에 보내는 찬사다. 이 향수가 영화라면 배경은 히피 향취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1970년대 초반이다. 히피의 허브는 클라리세이지 노트로, 환각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향신료가 더해진 앰버와 풍성한 우디 노트는 희미하게 맴도는 골루아즈 담배 냄새와 문 뒤에서 한창인 신나는 파티 냄새가 뒤섞인 기숙사 복도를 어렴풋이 기억나게 한다. 아늑한 바닐라 내음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향긋한 허브 향기가 휘감기면 얼굴에 미소 떠오른다. 옥스퍼드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추억하고 무모했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4) 옵세션
- 캘빈클라인
- Obsession by Calvin Klein
- 1980년대의 전형적인 스파이시 앰버
- 조향사 장 기샤르
- 1970년대 후반, 알싸한 향신료가 섞인 앰버는 새로운 향기의 물결로 데카당스의 관능미를 씻어 내렸다. 1980년대, 한껏 부풀린 머리와 짙은 눈화장을 한 센 언니들이 광고에서 우리를 노려보며 향수를 찾아 뿌렸다. 이런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 열정과 감정적 고통을 약속하는 강렬하고 스파이시한 앰버 향수인 캘빈클라인의 옵세션이 뛰어들었다. 결국 거절당할 다이아몬드를 가져다주느라 험한 바위 사이를 기다시피 넘어가는 고통에 찬 남자 같은 낮고 지친 목소리가 TV 광고에서 흘러나왔다. 그건 그렇고, 향기가 너무 좋다! 남자들은 오리지널이 업데이트를 거쳐 향조가 조금 누그러졌기 때문에, 이 시트러스, 플로럴, 스위트, 우드 스파이스 노트의 축제와도 같은 향수를 쉽게 뿌릴 수 있었다. 여자들은 1년 후 허브 향이 살짝 더해진 남성용 버전을 즐겨 뿌렸다. 둘 다 30년이 지나도록 인기를 누리고 있고, 이제는 구태의연해 보이는 광고와 달리 매력을 잃지 않았다.
5) 레 엑셉시옹: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 뮈글러
- Les Exceptions: Oriental Express by Mugler
- 끝내주는 앰버
- 조향사 올리비에 폴게, 장 크리스토프 헤로
- 누군가 뮈글러의 조향팀에게 "클래식 '오리엔탈’ 스타일 향수를, 최신 유행에 맞게, 뭐 좀 재량껏 얹어서 말이죠, 부탁해요"라고 요청했다면, 그게 바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다.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길가에 향신료 노점이 펼쳐져 있다. 작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 있는 레진, 가벼운 연기가 피어오르는 인센스, 수북이 쌓인 말린 대추와 꿀을 발라 구운 패스트리가 가득하다. 집에 돌아와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벨벳을 씌운 디반에 여유롭게 누워 숯을 넣은 화로에 미르 덩어리를 녹이고 말린 대추를 양껏 집어 먹는다. 영화 '더원스' 노래 가사처럼 완벽해, 아주 완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