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SE
11) 운 로즈 베르메유
- 타우어
- Une Rose Vermeille by Tauer
-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장미
- 조향사 앤디 타우어
- 운 로즈 베르메유는 비슷한 장미 향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밤에 벨벳 망토를 걸치고 나가는 종류의 장미다. 궁전 문과 왕실 그림 액자 테두리에 금박으로 새긴 황금빛 잎사귀인 베르메이다. 그리고 추기경 예하의 예복 같은 버밀리온(진홍색)이다. 화려하고 검붉은 장미가 향긋한 꽃잎으로 살결을 쓰다듬고, 방울진 설탕 같은 짙은 신더 토피가 금가루를 뿌린다. 장미는 아무도 존재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지만, 앤디는 퍼퓨머리의 탐험가다. 자신의 회사를 소유하고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고 있는데, 이는 자신이 원하는 향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안전한 내기가 아닌 위험한 도박이다. 다른 조향사는 대부분 핑크 캔디처럼 달콤하고 향긋한 장미 향수를 만든다. 아무도 장미 노트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12) 카페 로즈
- 톰포드
- Café Rose by Tom Ford
- 레드카펫 장미
- 조향사 앙투안 리에
- 이름 그대로 장미와 향신료가 곁들여진 커피 향이 풍부하다. 톰포드 향수는 당신의 도착을 알리고 레드카펫을 펼쳐 사람들이 뒤돌아보게 만든다. 홍보 담당자, 수행원, 10만 인스타그램 팔로워에 해당하는 향기로운 사람들이다. 카페 로즈는 장미 시럽을 곁들인 트리플 에스프레소처럼 농밀하고 강렬하다. 뿌린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가격이 비싸지만 한번 뿌리면 하루 내내 지속되기 때문에(샤워할 시간이 없다면 두 번) 그게 가성비라고 스스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13) 모망 드 보뇌르
- 이브 로쉐
- Moment de Bonheur by Yves Rocher
- 행복한 날들을 위한 장미
- 조향사 아니크 메나르도
- 이브로쉐는 그야말로 프랑스 답다. 고풍스럽고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은 마을에서조차 이브로쉐 매장을 찾을 수 있다. 요란한 특가 판매 행사는 조금 당황스럽지만, 밀고 나가 계속할 가치가 있다. 아니크 메나르도가 수석 조향사로 영입된 후 향수 애호가들은 맘에 안 드는 장신구 사은품이 담긴 택배 상자를 참아내며 다양한 향수를 더 진지하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모망 드 보뇌르는 산뜻하고 여름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싱그러운 그린 색조의 제라늄과 함께 진짜 장미 앱솔루트를 사용했다. 장미 정원의 향긋함은 풀 내음과 그 위에 살짝 얹은 톱밥 냄새를 더해 완성된다.
14) 로즈 앱솔루트
- H&M
- Rose Absolute by H&M
- 망설임은 시간만 늦출 뿐
- 조향사 올리비에 페슈
- 올리비에 페슈는 H&M 향수 전체 라인의 조향을 감독했는데, 니치 향수 전문가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죽어도 뿌리지 않겠다며 철저히 무시했다. 하지만 진정한 향수 애호가들은 이걸 찾아내기 무섭게 사들였다. 왜냐하면 일단 너무 향기가 좋았고, 올리비에 페슈는 딥티크 향수도 만들었거든. 로즈 앱솔루트는 H&M 향수 라인 중에 가장 비싼 축에 속하지만 50ml에 19.99파운드(한화 약 3만 원)로 놓치기 아까운 가격이다. 어둡고 관능적인 향취가 가득하며 붉은 과일, 바이올렛, 파촐리 노트가 어우러져, 진정한 장미꽃의 향긋함을 선사한다. 이 가격에 판매가 가능한 이유는 H&M이 제조사에 수백만 병을 주문했고 자체 매장과 유통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고급 향수만 못할 거라는 생각에 속지 말자.
* 참고
<장미의 역사>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 장미는 중국부터 불가리아, 터키, 프랑스를 거쳐 모로코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한다. 최고의 장미 앱솔루트는 센티폴라 로즈에서 얻고, 다마스크 로즈에서 추출한 장미 에센셜 오일은 더 가볍고 산뜻한 탑 노트에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장미 향수는 대부분 천연 장미로 만들지 않는다. 장미 단일 재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데다가, 조향사는 천연원료에 함유된 피부 민감성 물질을 줄인 합성원료를 블렌딩해 멋진 장미 향을 구현해서 환경 파괴 없이 지속 가능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천연 장미는 특유의 풍성하고 사랑스러운 향긋함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사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