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SMINE
1) 자스민 드 페이
- 페리스 몬테 카를로
- Jasmin de Pays by Perris Monte Carlo
- 대단히 노골적인 재스민
- 조향사 장클로드 엘레나
- 2016년 장클로드 엘레나가 에르메스를 은퇴한 이후 출시한 향수를 보면, 그가 무심코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미니멀리즘 스타일에 갇혔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스민 드 페이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남편 사이에 수영장 아르바이트생과 여름휴가를 보내는 '리비에라'의 나디아처럼 오프닝이 노골적이다. 좋은 재스민 향수는 어느 정도 인돌릭 향이 감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탠포드 와이프'처럼 텅 빈 냄새가 난다. 매끄럽기만 한 재스민 향수 대부분은 편안한 기분을 안겨주겠지만 자스민 드 페이는 강렬한 꼬릿함을 자랑스럽게 앞세우며 갑자기 등장하고,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대를 가차 없이 쓰러트린다.
2) 베르 드 플뢰르
- 톰포드
- Vert de Fleur by Tom Ford
-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자연의 향기
- 조향사 올리비에 질로틴
- 베르 드 플뢰르의 향을 맡으면 복싱 경기 전 두 선수가 몸무게를 재고 서로 얼굴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순간이 떠오른다. 힘이 넘치는 흙냄새와 풀냄새의 맹독이 떨어지는 발톱을 가진 갈바눔과 온실에서 포효하는 재스민 노트를 섞어 효과를 극대화했다. 한데 모인 갈바눔과 재스민은 마치 위협적인 꼬리를 가진 백호랑이가 떠오른다. 톰포드 프라이빗 블렌드 컬렉션이 만든 퇴폐적인 이미지에 비해 너무 튀고 지나치게 자기주장이 강한 향수다. 그래도 늘 빠르게 품절 리스트에 오르므로 보일 때 사두는 게 좋겠다.
3) 모멘티: 오르가스모 자스민
- 힐데 솔리아니 프로푸미
- Momenti: Orgasmo Jasmine by Hilde Soliani Profumi
- 매혹적으로 휘감기는 재스민 향기
- 조향사 힐데 솔리아니
- 오르가스모 자스민에 대한 현대적인 동화를 쓸 수 있다. 제멋대로인 왕자가 금지된 향수의 찬란한 향기에 빠져 한 번 뿌리자마자 재스민 덩굴이 빠르게 온몸을 옭아매는 이야기다. 힐데는 상반된 방식으로 이 향수에서 재스민 향이 난다고 말해준다. 사실이 그렇다. 신선한 재스민 꽃과 덩굴에 얽힌 동화 속 왕자의 냄새를 맡고 싶다면 시도해 보자. 힐데의 모멘티: 오르가스모는 아몬드 커피 향이 난다. 둘을 헷갈리지 말도록.
4) 플라워헤드
- 바이레도
- Flowerhead by Byredo
- 재스민을 들여다보면
- 조향사 제롬 에피네르, 벤 고햄
- 플라워헤드는 바이레도의 설립자 벤 고햄이 인도의 가족 결혼식에 참석해 머리에 썼던 화려한 재스민 화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향기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고화질의 선명한 재스민이 드러날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호박벌의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꽃이 커다랗게 보일 것이다. 종이처럼 얇은 하얀 꽃잎에서 꽃가루가 묻은 꽃받침까지 모든 줄기와 수술이 생생하다. 안젤리카, 스웨이드, 앰버그리스 노트는 도움이 되지만, 굼뜬 신부 들러리처럼 천천히 다가와 신부의 아름다움을 한껏 올리고 다시 배경으로 흩어진다. 공기처럼 가볍고 산뜻하지만 도도하고 매혹적이며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플라워헤드는 독보적인 재스민 향수다.
5) 폭시
- DSH 퍼퓸
- Foxy by DSH Perfumes
- 살짝 길들여진 야생동물
- 조향사 던 스펜서 허위츠
- 폭시는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하는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고 싶은 향수로 생각 없이 뿌리고 나갔다가는 낯선 사람이 쫓아올 만큼 매력적이다(아니면 그걸 원할 수도?). 로알드 달의 '똑똑하고 창의적이며 매혹적인 야생동물'인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에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은 조향사 던은 붉은여우에게 찬사를 보낸다. 엉뚱하지만 유려한 생강 노트 사과 위스키와 포근한 동물의 털 어코드 깊숙한 곳에서 야생 그대로의 재스민 노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털을 가진 야생동물이 낼 법한 냄새가 더해진 꽃향기다. DSH 퍼퓸은 값비싼 원료로 수제 향수를 만들며 그에 걸맞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