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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이야기

향수 종류(솔리플로르 - 투베로즈)

by 향기나는토끼 2023. 8. 2.

◈ TUBEROSE

 

1) 프라카스

- 로베르트 피게
- Fracas by Robert Piguet
- 마음속 파문이 이는 향기
- 조향사 저메인 셀리에
- 파리에 기반을 둔 조향사 저메인 셀리에는 1948년 디자이너 로베르트 피게의 패션 하우스를 위해 프라카스를 만들어 전쟁으로 멍든 세상에 대담한 매력의 빛을 비추었다. 프라카스는 시작부터 모스 노트로 끝맺을 때까지 두드러지는 자극적이고 크리미 한 투베로즈 노트가 특징이다. 프라카스를 뿌리면 갓 자른 꽃줄기의 희미한 풋풋함과 함께 웅장한 화이트 플로럴 부케 향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아한 여성미가 넘치는 히아신스, 네롤리, 제라늄, 장미, 아이리스, 바이올렛 플로럴 노트가 어우러져 함께 노래를 부르다, 마담 투베로즈가 지나가면 모두 흩어져 사라진다. 불가능할 정도로 매혹적인 프라카스는 뿌린 여성의존재감을 돋보이게 한다. 나라면 항상 그녀 곁에 앉겠다.

2) 누이트 데 베이클라이트

- 나오미 굿서
- Nuit de Bakélite by Naomi Goodsir
- 상을 거머쥔 강렬함
- 조향사 이자벨 도옌
- 악의가 냄새를 풍긴다면 누이트 데 베이클라이트의 향일 것이다. 안젤리카, 아르테미시아, 갈바눔 노트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오프닝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강렬하다. 버려진 신부의 썩어가는 결혼식 부케에서 뽑은 듯한 냄새가 나는 투베로즈의 씁쓸한 향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이 향수는 그 반항적인 태도로 상을 받았고 내가 여태 맡아본 향수 중 가장 흥미롭다. 투베로즈 향수 대부분이 가진 특징인 명백하고 도드라지는 아름다움에 익숙해진 다음에 시도해 보는 게 좋겠다. 누이트 데 베이클라이트는 거칠고 무례하게 대할수록 흥미와 관심이 돋는 나쁜 연인과 닮아 있다.

3) 굿 걸 곤 배드

- 킬리안
- Good girl gone Bad by Kilian
- 짓궂으면서도 점잖은 투베로즈
- 조향사 알베르토 모릴라스
- 런던의 벌링턴 아케이드에 있는 킬리안 부티크에 가서 처음 맡았던 향수가 굿 걸 곤 배드였다. 예상했던 대로 사치와 풍요로움을 불러일으키는 향기였지만, 우리를 둘러싼 고급진 장소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프닝에 선사하는 투베로즈 노트는 강렬한 중독성으로 맡는 즉시 포로가 되어버린다. 가볍게 하늘거리는 오스만투스와 메이 로즈 노트가 고전미를 더해주지만 투베로즈와 재스민 노트는 누구도 이겨낼 수 없는 동맹을 형성한다. 투베로즈는 다시 깔끔한 화이트 머스크, 코코넛 플로럴의 눅눅한 줄기 내음으로 마법처럼 강렬하게 마녀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듯 휘어잡는다. 수선화 노트가 노란 피리로 꿀 내음이 나는 곡조를 연주하지만 아무도 투베로즈 곁을 지나치지 못한다. 굿 걸 곤 배드는 후각에 거는 마법이고 나는 풀려날 생각이 없다.

4) 버블검 시크

- 힐리
- Bubblegum Chic by Heeley
- 코에 착 달라붙는 투베로즈 향기
- 조향사 제임스 힐리
- 껌을 씹는 게 무례한 행동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가정에서 자란 내게 풍선껌은 항상 금단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힐리의 버블검 시크는 분홍빛 풍선껌을 불다 터트려 얼굴에 붙을 때까지 주둥이에 넣고 씹던 그 쿨내 나는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충분히 만회할 만큼 강렬하게 팡팡 터진다. 투베로즈에 대해 말하자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에서 추출했다 하더라도 플라스틱과 같은 합성원료의 향이 난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향수라도 투베로즈가 더해지면 언제나 유혹하러 나간 뒤 낯선 침대에서 밤을 보내는 향기가 난다. 버블검 시크는 고급스러움 자체고, 그 매력을 지나칠 수 없다.

5) 투베로즈 크리미넬

- 세르주 루텐
- Tubereuse Criminelle by Serge Lutens
-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
- 조향사 크리스토퍼 쉘드레이크
- 어느 날 멈스넷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고 투베로즈 크리미넬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머스넷 이용자가 이 향수를 시향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세계 최악의 향수'라는 제목으로 리뷰를 올려놨다. 투베로즈 숭배자로서, 나는 투베로즈 크리미넬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비밀리에 만날 계획을 세웠다. 누구도 쓰고 싶어 하지 않을 러브레터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할 셈이었다. 나는 투베로즈 성애자이고 투베로즈가 선사하는 즐거운 모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이다. 이제 그만 멈추어 달라는 의미를 담은 세이프 워드를 안다면 나와 함께 가자. 소독약과 방충제 사이 어디쯤의 냄새가 나는 클로브와 스티랙스 어코드가 선사하는 오프닝은 아주 카랑카랑하고 강렬해서 마치 총천연색의 인스타그램 네온 필터를 통해 하얀 봉오리 향기를 흡입하는 기분이 든다. 추워서 닭살이 돋은 채 우물쭈물 옷을 벗고 수영하러 가는 사람처럼 강렬했던 오프닝의 향기는 다음 노트로 아주 천천히 마지못해 자리를 내어준다. 마침내 재스민, 오렌지 꽃, 히아신스 노트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향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몽환적인 세계를 즐길 수 있다.

6) 카날 플라워

-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 Carnal Flower by 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
- 10점 만점에 10점
- 조향사 도미니크 로피용
- 투베로즈 신봉자에게 카날 플라워는 성지 순례와도 같다. 다른 어떤 투베로즈 계열 향수보다 더 많은 투베로즈 앱솔루트를 함유했다는데, 경험자로서 나는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투베로즈 노트 꾸덕함에서 셀러리와 비누 내음을 거쳐 매끄러움까지 실로 다양한 면을 가진 복잡한 물질이다. 전설적인 조향사 도미니크 로피용은 투베로즈를 모두 해체해서 각 면에 어울리는 파트너와 함께 다시 조립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오디오의 저음과 고음, 소리를 조정하며 절묘한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카날 플라워는 약재 냄새에 가까운 강렬한 투베로즈 노트로 시작한다. 진한 향기가 점차 잦아들면 코코넛, 멜론, 유칼립투스, 재스민의 조화로 부드러운 면모가 드러난다. 자극적인 강렬함, 크림 같은 질감, 싱싱한 채소내음이 모두 들어 있다. 궁극의 투베로즈 향을 찾고 있었다면, 순례자여, 드디어 도착했도다!

* 참고

<투베로즈는 장미일까?> 투베로즈의 라틴 학명은 덩어리가 있는 폴리안투스라는 의미의 폴리안테스 투베로사다. 프랑스 사람들은 튜베뢰즈라고 읽고 영어로는 튜베루스라고 발음해야 하지만, 그 대신 장미와 투베로즈 애호가를 혼란스럽게 하고 결국 단념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 우아하고 세련된 투베로즈라는 이름이 붙었다. 투베로즈는 화이트 플라워의 한 종류로 향기를 추출하기 위해 꽃잎을 가열하고 식히는 과정에서, 한 방울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기쁨을 약속하는 강렬한 애니멀릭 향조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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