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LORAL
1) 베르벤느 드 유진
- 힐리
- Verveine d'Eugène by Heeley
- 베란다에서 마시는 버베나 칵테일
- 조향사 제임스 힐리
- 요크셔 태생의 파리지앵인 제임스 힐리가 구사하는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면, 베르벤느드 유진은 기가 막히게 잘 골라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무작위로 놓인 철자에 보너스로 구두점까지 찍힌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그저 베르베인이나 오 드 베르베인, 아니면 정말 단순하게 레몬 버베나로 알고 있다. 그게 바로 베르벤느이고, 문제의 유진은 나폴레옹 3세의 아들 유진 보나파르트 왕자의 이름이다. 그는 버베나 향수를 썼지만, 이것만큼 좋지는 않았을 거라고 장담한다. 알싸한 블랙커런트와 섬광처럼 스치는 루바브 가볍게 치고 나오는 재스민 노트,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부드러운 머스크 매트리스가 느껴진다. 힐리의 향수 컬렉션은 대부분 클래식이고 개중 일부가 흥미롭게 기존의 틀을 벗어나 관심을 끌기 때문에 언제나 인기가 많다.
2) 해피
- 크리니크
- Happy by Clinique
- 우리 모두 다 함께 손뼉을
- 조향사 장 끌로드 델비유, 로드리고 플로레스 루
- 해피는 1990년대 후반 아수라장 같던 시트러스 향수 시장에 쾌활하게 등장했다. 1995년쯤 조향팀은 다음 대박을 꿈꾸며 시트러스와 플로럴 노트를 거의 형광에 가까울 만큼 선명하고 강렬하게 해주는 새로운 화학향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해피는 혜성같이 등장할 준비를 마쳤다. 내가 여태 본 노트 목록 중에 가장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 가득하다. 대체 고객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노트는 향수의 원료가 아니라 향수에서 나는 향을 표현하는 것이며 조향에 꼭 사용하는 요소가 아니다. 보이젠베리 플라워, 모닝듀 오키드, 멜라티 플라워 등등. 해피는 활짝 핀 꽃다발 위에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오렌지 - 자몽 - 베르가못 노트로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해피와 함께 행복해지자.
3) 로 아 라 폴리
- 퍼퓸드 니콜라이
- L'Eau à la Folie by Parfums de Nicolai
- 한 박자 늦게 오는 만족감
- 조향사 패트리샤 드 니콜라이
- 시간이 필요한 향수가 있다. 향수를 뿌리고 '이게 뭐야?'라며 절망감에 투덜거릴 수 있지만 10분만 기다리면 기억에 남을 만한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사실 로 아 라 폴리는 20분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패트리샤 드 니콜라이는 베르사유의 ISIPCA에서 조향사로 훈련받은 화학자다. 가족들은 그들이 속한 상류 계급에선 여자가 굳이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패트리샤가 훈련받았던 회사는 조향팀에서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편견은 패트리샤가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는데 자극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패트리샤는 독특함으로 무장한 클래식 향수를 만들고 있다. 대형 브랜드는 절대 출시할 수 없는 멋진 향수다. 로 아 라 폴리는 깜짝 놀랄 정도로 갑자기 시작해서 불타오르듯 강렬한 그린 민트 - 라임 - 주니퍼 노트를 사방에 퍼트리고 프루티 플로럴 우디 베이스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패트리샤 말로는 럼주 노트도 들어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4) 오 드 지방시
- 지방시
- Eau de Givenchy by Givenchy
- 시크하면서도 부드럽고 세련된 아름다움
-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시
- LVMH가 위베르 지방시의 향수 하우스를 인수했다. 오 드 지방시는 2018년 재출시되었고 마스터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시가 이끌었기 때문에, 불안도 놀라움도 없이 그저 좋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머니가 (또는 아버지가)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가벼운 시프레 향수인 오리지널 버전을 뿌렸다면, 아마 그 깊이와 농밀함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방시는 같은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전통을 따르려는 존경심을 보였다. 레몬, 스위트오렌지, 비터 오렌지의 시트러스 3인방이 균형 있게 어우러지고, 살짝 민트 향이 감도는 오렌지 노트는 향기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전에 모스 노트가 있던 베이스 자리에는 이제 머스크와 가벼움이 남았다.
5) 티주라
- 겔랑 아쿠아 알레고리아
- Teazzurra by Guerlain Aqua Allegoria
-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차의 향기
- 조향사 티에리 바세
- 소금은 냄새가 나지 않지만 티주라라는 이름을 보건대 블루 티의 향기를 연상시키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다. 궁금해서 실제로 어떤 맛이 나는지 향수를 뿌리고 핥아본 적도 있다. 짠맛 따위는 느껴지지 않으니 절대 따라 하지 말도록, 티주라는 지중해 요트 위에서 마시는 마가리타 칵테일 같다. 잔에 가득 담긴 다양한 시트러스 노트와 뚜렷하고 인상적인 재스민 티 향기를 머스크와 바닐라 노트가 노을이 지듯 가볍고 부드럽게 일렁이며 감싼다. 요트를 타느니 차라리 이 향수를 갖겠다.
6) 크리스탈 오 베르뜨
- 샤넬
- Cristalle Eau Verte by Chanel
- 에메랄드빛 그린 크리스탈
- 조향사 자크 폴주
- 무슈 폴주는 크리스탈의 여동생 격인 크리스탈 오 베르뜨(그린 워터)도 조향 했다. 향수 자매는 때때로 이름 외에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크리스탈이라는 이름은 두 향수의 부모가 같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 베르뜨는 완벽하다. 부분적으로는 깊은 숲 속의 이끼 향이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고, 전반적으로는 시트러스와 플로럴 노트가 어우러져 궁전 벽을 휘감은 생경한 덩굴처럼 환상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향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뿌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울창한 숲길을 걷는 듯한 기분 좋은 향기가 느껴진다.
* 참고
<시트러스의 화학적 성질> 시트러스 에센션 오일은 대부분 과일 껍질에서 추출한다. 레몬 제스트를 갈거나 오렌지껍질을 벗기면 나오는 과즙이 순수한 에센셜 오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천연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나무가 다음 세대의 나무가 될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시트러스 에센셜 오일은 천연 화학향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때때로 살아 있는 식물에서 성장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파이토케미컬이라고도 부른다. 리모넨, 시트랄, 리날룰, 안트라닐산메틸, 시트로넬랄, 제라니올을 포함한다. 과일나무 말고 다른 식물에서도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장미, 제라늄, 라벤더, 타임, 주니퍼, 당근 씨앗, 로즈우드, 생강, 카다멈 등은 시트러스 에센셜 오일과 같은 천연 화학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종종 시트러스 노트가 어디서 끝나고 허브와 플로럴 노트가 어디서 시작하는지 구분하기가 까다롭다. 레몬 노트가 섞인 장미 향일까 아니면 장미 노트가 섞인 레몬 향일까?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시트러스 향은 플로럴, 우디 블렌딩에 부드럽게 섞여 들어 우리를 무기력한 기분에서 끌어올려 준다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