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REEN
1) 팻 일렉트리션
- 에따 리브르 도랑쥬
- Fat Electrician by Etat Libre D'Orange
- 뜨거운 전선과 흙 묻은 나무 냄새
- 조향사 앙투안 메종디외
- 향수에 팻 일렉트리션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분명 관심을 끌겠지만, 헐렁하게 걸쳐 입은 작업복 틈으로 보이는 엉덩이보다 훨씬 더 즐길 거리가 많은 향수다. 팻 일렉트리션은 놀랄 만큼 매력적인 베티베르로 시작하고 끝난다. 촉촉한 흙내음, 싱그러운 풀내음, 거칠거칠한 나무 향기는, 깔깔하면서도 부드러워 살짝 그을린 금속 케이블과 작업복 사이로 언뜻 보이는 가슴 털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다움 속에 부드러운 달콤함이 깔려 있고 크림과 마롱 글라세 노트가 턱수염이 난 채 구슬땀을 흘리는 영웅의 섬세한 면모를 더한다. 어쩌면 그는 달콤함을 아껴두었다가 집에 도착해서 관자놀이에 묻은 땀, 구리선과 불꽃의 냄새, 자신의 체취를 그대로 놔둔 채, 사랑하는 통통한 얼룩 고양이 친구 팻 태비를 쓰다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 부아 드 아드리앙
- 구딸
- Bois d'Hadrien by Goutal
- 숲속에서, 무화과 잎사귀에 뒤덮인 채로
- 조향사 까밀 구딸
- 조향사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방법 : 브랜드의 이름과 포장을 동시에 변경한다. 그 브랜드는 설립자의 이름을 딴 아닉 구딸이고, 클래식한 타원형 유리병은 촌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멋진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괜찮을지어다. 부아 드 아드리앙은 이자벨 도옌이 만든 오 드 아드리앙의 다음 세대다. 분명 프루티 노트가 있는데도 드라이하고 우디한 향이 나서 아주 흥미롭다. 오프닝의 싱그러운 그린 노트는 구딸이 아이비라고 했지만, 유형을 타고 있는 무화과 노트에 좀 더 가깝고 노골적으로 강렬한 향이 아니라, 낙엽에 부드럽게 싸여 있는 잘 익은 과일의 향긋함이 느껴진다. 향수를 뿌리고 20분 정도 지나면 내가 내 팔을 감싸 안고 싶어진다. '부아(숲)' 의 경우 싱그러운 이탈리아 소나무 숲이다.
3) 운 자르뎅 수르닐
- 에르메스
- Un Jardin Sur Le Nil by Hermes
- 해가 떠오르는 초록빛 정원
-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 나일강의 무성한 식물 섬에서 영감을 받은 운 자르뎅 수르닐은 물, 고요함, 멀리 떨어진 이국적인 땅 아득한 옛날부터 흐르던 강 자체가 주는 신비로움을 포착한 묘한 즐거움을 선사 한다. 장 클로드 엘레나는 특유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조합으로 한폭의 수채화를 완성한다. 섬의 새벽은 자몽, 히아신스, 이국적이고 통통한 망고 향기가 가득하다. 쾌활하게 도드라지는 레몬처럼 상큼한 토마토 잎사귀와 흙이 묻은 당근 향기 사이로, 싱그러운 그린 노트와 초목의 풋풋한 내음이 언뜻언뜻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맑고 가벼운 수련은 잔물결을 따라 강물에 비친 모습이 일렁거린다. 오솔길을 따라 야생화가 옹기종기 피어있고 숲에 무성한 나무에서 새들이 떼지어 합창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강가의 공기는 목가적인 섬의 낙원이 가진 가장 좋은 향기만 실어온다.
4) 알바 디 서울
- 산타 마리아 노벨라
- Alba di Seoul by Santa Maria Novella
- 고요한 서울의 소울을 담아
- 조향사 미공개
-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매장을 방문하면, 적어도 한 무리의 한국 단체 관광객과 마주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수도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를 출시하는 건 현명한 생각이다. 서울의 영혼을 제대로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한국인 친구는 멋진 시도였다고 생각했다. 소나무 사이사이 아늑하게 걸린 옅은 안개, 폭신하고 부드러운 흙내음, 숲의 정령이 느껴진다. 향기는 마치 꿈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가고 아리송하며 은은한 인상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동아시아에서는 개인적 거리보다 더 멀리 향수 냄새가 퍼지게 하는 행동을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알바 디 서울은 향수를 뿌린 기색은 느껴지지만, 잔향이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예의 바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알바 디 서울이 제격이다.
* 참고
<그린우드 속으로>
숲에서 영감을 받은 그린 우드 향수는 아득히 오래된 오크 향보다 늘 푸른 상록수와 묘목의 향기가 더 많이 난다. 고풍스러운 가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 내음이다. 발밑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흙이 있고, 여름날 햇살을 피하듯이 푸른 향기가 물씬 풍기는 허브, 풀잎, 그린 망고, 상쾌하고 시원한 솔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