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향수 종류(컨셉 – 스모크Ⅰ)
◈ CONCEPTS
일반적인 향수의 한계를 넘어서는 향기가 있다. 멋진 향기다. 경계는 허물기 위해 존재하며, 국경은 건너라고 있는 것이다. 고무, 가죽, 연기, 화약, 플라스틱, 동물의 향기로 우리를 낯선 곳에 데려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향수를 소개한다.
보통 브랜드에서 가장 잘 팔리는 향수는 아니지만, 관심을 받으며 소비자를 다른 향수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가장 엉뚱하고 기묘한 컨셉의 향기는 향수 애호가들을 매장이나 디스커버리 세트로 향하게 한다. 결국 사서 들고 나오는 게 다른 향수라고 해도 말이다. 도전해 볼 생각이 있다면, 불을 끄고 향기를 맡을 준비를 하자.
◈ SMOKE
1) 블랙
- 불가리
- Black by Bvlgari
- 완벽한 어둠
- 조향사 아닉 메나르도
- 불가리의 블랙은 단종된다는 소문이 몇 년 동안 돌았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면 안전한 장소에 몇 병을 보관해두는 게 좋겠다. 향수병 자체가 걸작이다. 부드러운 고무 타이어를 두 른 바퀴가 옆으로 누워 있다. 인디 조향사의 부러움을 사는 비싼 패키징이다. 검은 옷을 입은 향수의 대부분은 어둠을 약속하면서도 솜털 같은 과일 머랭의 향기가 나지만, 불가리의 블랙은 병을 보고 기대하는, 고무, 가죽, 아스팔트 냄새를 선사한다. 와플 가게를 보고 급히 타이어 자국을 남기며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살짝 달콤한 향기가 난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진다. 길을 잘못 들었다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돌아서 다시 나가는 게 얼마나 쉬울지 궁금해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몬드가 있다.
2) 블랙 엔젤
- 마크 벅스톤
- Black Angel by Mark Buxton
- 검은 옷에 가려진 부드러운 앰버
- 조향사 마크 벅스톤
- 처음 30초 정도는 공포가 가득하다. 천년을 잠들어 있던 무시무시한 존재가 깨어나 인류에 대한 복수를 위해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고무를 태우고, 아스팔트에 생긴 웅덩이를 끓이고, 악마는 소리를 지르고...대혼란이 지나가고 나면 기분 좋은 생강과 나무 향이 느껴지는 따뜻한 앰버 노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옷을 입고 메탈 장식을 찰캉거리며 고스 화장을 한 사람과 버스를 같이 타고 가다가 둘 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끈적끈적하고 연기가 자욱한 살벌한 검은 색으로 시작해서 온기가 느껴지는 불 옆에 놓인 달콤한 드람부이처럼 가라앉는다.
3) 토네르
- 뷰포트 런던
- Tonnerre by BeauFort LONDON
- 위험할 정도로 어둡고 짙은 향기
- 조향사 줄리 말로우, 줄리 덩클리
- 여러분은 브랜드 설립자인 레오 크렙트리가 뷰포트 런던 향수로 해낸 모든 걸 사랑해야 한다. 레오는 꿈꾸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길을 올곧이 걸었다. 레오가 상상하는 향수를 구현하려고 조향사 줄리를 찾았고, 그 전에 심지어 스스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보기도 했다. 토네르는 해군 사이에 벌어지는 격전의 냄새로, 화약, 바닷물, 피, 브랜디, 연기가 가득하다. 잔향이 남고도 남아 무서울 정도로 길게 곁을 맴돈다. 갑자기 맡으면 본능이 그 냄새로부터 어서 도망치라고 말할 정도다. 그게 바로 후각이 하는 일이다. 로열 세익 스피어 극단은 전투 장면에 들어가는 모든 배우가 이걸 뿌릴 수 있도록 무대 뒤에 두어야 한다.
4) 온 더 로드
- 티모시 한
- On The Road by Timothy Han / Edition
-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 위에서
- 조향사 티모시 한
- 같은 이름의 잭 케루악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온 더 로드는, 1951년 악명 높던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의 도로 여행이 그려내는 변화의 향기를 담고 있다. 티모시 한은 대개 천연 원료를 사용하지만, 동물 학대를 피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합성원료를 향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버치 노트로 건조한 포장도로를, 구아이악우드 노트로 뜨거운 고무 타이어의 냄새를 만들어냈다. 성별의 경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유니섹스 타입이지만, 백화점 향수 매장의 핑크색 진열대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오크모스, 파촐리, 베르가못 노트가 들어가면 보통 기술적으로 시프레 계열 향수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온 더 로드는 시프레의 하드코어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