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로럴
모든 향수에는 대부분 플로럴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가장 짙고 묵직한 우드와 가장 신선한 허브도 있다. 이 장에서는 플로럴 부케 향수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과일이 들어간 프루티 플로럴 향수로, 일부는 싱그러운 잎사귀도 들어가 갓 딴 꽃의 매끄러운 느낌을 강조하기도 한다. 플로럴 향을 머금은 향수는 다른 장에서도 종종 볼 수 있으며 노트를 꼼꼼히 분류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머스크 플로럴 향인지 플로럴 머스크 향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결정은 여러분의 자유다.
에센셜 오일을 처음 추출하기 시작한 이래로 플로럴 향수는 남성과 여성 모두 즐겨 뿌렸다. 굳이 1000년이 넘은 이 전통을 망칠 필요가 있을까? 누구든 꽃내음을 과시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블렌딩 플로럴 향수를 다루며, 한 가지 꽃향기를 강조하는 향수는 솔리플로르 장에 따로 정리했다.
◈ CLASSIC
1) 레흐 뒤땅
- 니나리치
- L'Air du Temps by Nina Ricci
- 꿈과 희망을 다시 한번
- 조향사 프란시스 파브론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 출시되었고, 비둘기 모양의 뚜껑은 가슴 아픈 평화의 상징이다. 레흐 뒤땅은 빛과 그림자의 향수이고, 슬픔과 기쁨을 모두 선사하는 교향곡이다. 고요한 침묵 뒤에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는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미소 짓게 한다. 플로럴과 알데히드 노트가 폰즈의 콜드크림, 장미, 재스민, 앙증맞은 오렌지 꽃을 섞은 듯한 극도로 여성적인 어코드를 선사한다. 파촐리, 베티베르, 진하고 매캐한 레진이 어우러진 단단한 베이스 노트는 날아가는 꽃향기를 붙잡아 앰버의 황금빛 아우라로 감싼다. 변화무쌍한 향을 지니고 있어서 10대였던 나부터 60대였던 이모까지 내가 향기를 맡아본 모든 나이대에 잘 어울렸다.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향수다.
2) 켈크 플뢰르 로리지날
- 우비강
- Quelques Fleurs I'Original by Houbigant
- 지나간 시간을 찾아서
- 조향사 로베르 비네메
- 켈크 플뢰르는 1912년 출시되었고 30ml당 15,000송이의 꽃을 자랑한다. 가장 좋아하는 꽃을 잔뜩 가져다가 커다랗고 고풍스러운 꽃병에 빽빽이 꽂으면, 숨이 멎을 듯한 고급스러움이 퍼져나간다. 잘 손질된 정원에서 갈바눔과 베르가못 노트로 만들어진 싱그러운 녹색 아치 사이를 지나 세심하게 관리한 가장자리에 닿는다. 켈크 플뢰르는 꽃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선보이는 대신 최고 중에 최고를 그러모아 자신만의 독특한 하이브리드를 창조했다. 파우더 가루와 주근깨 같은 꽃가루로 희미하게 흐려진 화려한 꽃무늬 실크 벽지와 틀림없이 일치한다. 잡지 <마리끌레르>에 따르면 웨일즈의 공주 고(故) 다이애나비가 결혼식 날 자신의 유명한 웨딩드레스에 이 향수를 쏟고 꽃다발로 숨겼다고 한다.
3) 뷰티풀
- 에스티 로더
- Beautiful by Estée Lauder
- 그래, 바로 이거야
- 조향사 소피아 그로스만, 베르나르 송
- 광고에서 폴리나 포리즈코바가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선보인 후, 얼마나 많은 여성이 이걸 뿌리고 결혼식장에 들어섰는지는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뷰티풀은 꽃 수천 송이가 뿜어내는 향기로 공주의 결혼식에 어울리는 웨딩 아치, 정원, 부케의 갖가지 꽃을 모두 모아 만들었다. 마치 점묘화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플로럴 노트로 향기는 풍부하고 아찔하면서도 크림같이 부드러우며 기분 좋은 밀도감이 느껴진다. 다양한 꽃향기가 벌이는 축제가 온종일 이어진다. 마음을 사로잡는 투베로즈를 중심에 두고, 은방울꽃, 오렌지 꽃, 재스민, 카네이션, 제라늄, 장미, 미모사, 프리지어, 가드니아 등 신부라면 누구나 바랄 꽃으로 감싸 만든 플로럴 부케는 뷰티풀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 색채와 향기, 그리고 기쁨이 가득한 이 향수를 인생의 중요한 날을 위해 아껴두지 말자. 병에만 머물기에는 너무 눈부시게 아름답다.
4) 아나이스 아나이스
- 까사렐
- Anais Anais by Cacharel
- 가볍고 산뜻한 플로럴 향수의 전설, 가격도 마찬가지
- 조향사 로제 펠레그리노, 로베르 고넌, 폴 레제, 레이몬드 샤일란
- 아나이스 아나이스는 까사렐의 첫 향수로, 플로럴 계열 향수의 클래식이 되었다. 요즘 유행이 뭔지 신경 쓰지 않으며, 1978년 출시 당시에도 그랬다. 까사렐은 아주 현명하게도 오리지널에 손을 대는 대신 현대인의 취향에 맞추어 플랭커 향수인 아나이스 아나이스 프리미어 델리스를 출시했고, 오리지널 애호가들은 안도했다. 아나이스 아나이스의 플로럴 부케는 현실에서 꽃다발로 만들면 화려해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향수병 안에서는 여성스러운 섬세함이 느껴진다. 히아신스, 백합, 은방울꽃 노트로 시작해, 아이리스, 재스민, 장미, 투베로즈, 카네이션 노트로 향기의 팔레트를 넓혀간다. 약간의 시트러스는 향이 너무 부드러워지지 않게 잡아주며 은은한 오크모스, 샌달우드, 베티베르 베이스 노트는 꽃향기가 무대 위에 더 오랜 머무를 수 있도록 감싸준다. 아나이스 아나이스는 시간을 초월한 천상의 아름다움이다.
* 참고
<플로럴 조향의 예술적 기교> '클래식'은 장미, 재스민, 바이올렛 아이리스 은방울꽃, 제라늄, 일랑일랑, 투베로즈 오렌지 꽃 미모사 등 모든 혹은 여러 종류의 플로럴 노트를 조합해 만든 향수를 의미한다. 클래식 향수를 만든다는 건 그저 플로럴 노트를 목록에 늘어놓는 게 아니라 예술적인 조향 기술로, 하나의 완전한 향기를 창조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