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ASSIC
1) 오 드 아드리앙
- 구딸
- Eau d'Hadrien by Goutal
- 시대를 초월한 단순함
- 조향사 아닉 구딸, 프란시스 카마일
- 푸른 하늘 아래 레몬 숲 사이를 걷고 싶다면 오 드 아드리앙을 뿌리는 게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창조물은 모든 것이 과했던 '달라스와 다이너스티'의 시대인 1980년대에 한껏 올린 어깨뽕과 부풀린 머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했다. 꾸준히 인기를 끌어 2008년 TFF 어워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단순해지라고, 멍청아 Keep It Simple, Stupid'라는 오래된 해군의 격언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 드 아드리앙은 정확히 이 격언대로 놀라운 아이디어를 뽐냈다. 더 강렬하고 청량감이 느껴지는 자몽이 더해진 완벽한 레몬 향,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일랑일랑의 손길, 잔잔하면서도 풍성한 소나무 향,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푸른 하늘이 떠오르는 알데히드. 단순해진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뜻이며, 이 고전미가 넘치는 향수는 결코 유행에 뒤떨어진 적이 없다.
2) 세피로
- 플로리스
- Cefiro by Floris
-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시트러스 향기
- 조향사 미공개
- 세피로는 향신료를 곁들여 갈증이 싹 가시는 차의 깔끔한 향과, 레몬, 오렌지, 라임의 톡 쏘는 상쾌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라운 첫 향은 마치 천사가 구석구석 문질러 닦아준 것처럼 매끈하고 깨끗하다. 하지만 겸손한 우리 인간처럼, 시트러스 노트는 종일 활기차게 지속되지 않는다. 빠르게 자취를 감추는 시트러스 노트에 대한 실망은 곧 배턴을 이어받은 재스민 꽃잎의 싱그럽고 산뜻한 향으로 상쇄된다. 카다멈과 너트맥(따라서 향신료를 곁들인 차의 향기)이 감도는 알싸름한 향은 산들바람 한줄기에 실린 콜로뉴의 향과 함께 당신을 어스름한 숲으로 이끈다.
3) 오 드 랑콤
- 랑콤
- Ô de Lancôme by Lancôme
- 1969년의 여름
- 조향사 로버트
- 향수는 유행을 타긴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추적하기가 훨씬 어렵다. 디올의 오소바쥬가 없었다면 오 드 랑콤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련미가 지배하던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가 되자, 갑자기 경쾌함과 활력을 불어넣는 상큼한 시트러스에 대한 갈망이 일면서 오 드 랑콤이 탄생했고, 지금도 여전히 최고의 시트러스 향수 중 하나다. 클래식답게 탑 노트는 베르가못, 레몬, 오렌지, 미들 노트는 허브 블랜딩, 베이스 노트는 깊고 진한 시프레다. 오크모스와 라브다넘 향은 성분 규제가 없었던 1960년대에는 꽤 도드라졌지만, 지금은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비밀스러운 조력자다. 오 드 랑콤은 남성용도 출시되었지만, 굳이 쓸 필요 없이 오리지널이면 모두에게 충분하다.
4) 오 드 로샤스
- 로샤스
- Eau de Rochas by Rochas
- 잊을 수 없는 당신
- 조향사 니콜라스 마나스
- 오, 내 사랑! 오 드 랑콤이 출시된 지 1년 후, 로샤스는 원래 오 드 로슈로 이름 붙였던 향수를 재출시했다. 오 드 랑콤과 비슷했던 이전 향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훨씬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오 드 로샤스는 자몽, 플로럴, 시프레 노트가 더 풍부해서 말로 설명하기 조금 어렵지만 다른 향수에 비해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21세기 버전은 오 드 로슈보다 매력이 약간 덜한데, 이는 푸로쿠마린에서 추출한 베르가못 에센셜 오일의 안전성을 좀 더 개선했기 때문이다. 푸로쿠마린은 향수에 깊이와 풍미를 주지만 피부가 햇빛에 민감해지도록 하기도 한다. 굿바이 푸쿠. 이렇게까지 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감히 오 드 로샤스는 완벽한 시트러스 계열 향수라고 말해본다.
5) 오 드 퀴닌
- 지오 F. 트럼퍼
- Eau de Quinine by Geo. F. Trumper
- 영국신사의 콜로뉴
- 조향사 미공개
- 이 향수의 기원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외에 나가 있던 영국인들은 당시 토닉에 함유된 퀴닌이 최고의 말라리아 치료제였기 때문에 모기를 쫓아내려고 진토닉을 마셨다. 트럼퍼는 런던에서 신사복과 구두 거리로 유명한 저민 스트리트에 향수 하우스를 차렸다. 지금은 원래 위치에서 바로 모퉁이를 돌면 찾을 수 있으니 꼭 가보았으면 한다. 오 드 퀴닌을 향수라고 부르는 것이 젠틀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신사들에게 반감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깔끔한 베르가못과 허벌 탑 노트 아래 풍기는 플로럴과 파우더리한 향을 깨닫는다면 소스라치게 놀라 왁스로 광을 낸 콧수염이 찌그러질지도 모른다. 가격도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