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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이야기

향수 종류(시트러스 – 오렌지)

by 향기나는토끼 2023. 7. 14.

◈ ORANGE

 

1) 플레르

- 데따이으
- 발코니에서 마시는 얼그레이 차
- 조향사 미공개
- 꽃향기가 나지 않는 향수에 꽃을 뜻하는 플레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깜찍한 광기다. 가볍고 상쾌한 시트러스 향 콜로뉴를 찾던 중이라면 이 향수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심지어 포장 상자에는 장미꽃도 그려져 있다. 사실 플레르는 라벤더와 제라늄 꽃 향을 함유하고 있지만, 이 향수에서는 베르가못, 페티그레인, 레몬에 허브 향이 더해져 끌어낸 청량감 있는 숲의 향취만 느껴진다. 파촐리는 히피의 꽃내음이 조금도 나지 않고 시트러스 향을 더 풍부하게 할 뿐이다. 데따이으는 1905년 설립된 불사조 같은 브랜드로, 파리 셍라자흐 가에 있는 작은 향수 하우스는 찾아가 볼 만하다.

2) 오 도랑쥬 베르트

- 에르메스
- Eau d'Orange Verte by Hermès
- 아침에 향수 한잔
- 조향사 프랑수아즈 카롱
- 늦게 일어나 정신없는 날, 빠르게 마시는 커피 한 모금과 오 도랑쥬 베르트로 아침을 시작한다. 강렬한 프루티 노트는 과일을 양껏 먹은 듯 든든하고 베이커리에 가서 팽 오 쇼콜라를 집을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지속력은 그 정도이므로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한 번 더 뿌려주면 좋다. 에르메스 시즌 기프트박스에는 종종 그 순간을 위한 핸드백에 들어갈 만큼 작은 휴대용 향수 공병이 들어 있다. 비가라드와 마찬가지로 비슷하지만 같지 않고 가벼움과 지속력을 맞바꾼 꽁상트레 버전이 있다. 쌉싸름한 그린 만다린과 달달한 블랙커런트 약간, 열대 과일 스무디,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파촐리와 오크모스를 시프레 베이스가 끈이 없는 시폰 드레스의 가느다란 보닝처럼 받쳐준다. 프랑수아즈 카롱은 경이로운 향수를 만들어냈다. 쇼 드 카르뎅, 장 샤를르 브로소를 위한 옴브레 로즈, 엔젤 가든 오브 스타 바이올렛, 그리고 군침돌게 만드는 이 그린 오렌지 향수.

3) 오랑쥬 상긴느

- 아틀리에 코롱
- Orange Sanguine by Atelier Cologne
- 갓 짜낸 오렌지의 싱그러움
- 조향사 랄프 슈비거
- 시트러스의 강렬함을 지닌 이 오 드 퍼퓸은 아침 햇살의 첫 줄기처럼 당신의 얼굴을 때릴 것이다. 아틀리에 코롱은 콜로뉴가 가진 최고의 특징에 오 드 퍼퓸의 강렬함과 지속력을 더해 이 향수를 만들었다. 오랑쥬 상긴느는 비타민처럼 싱그러운 향으로 온몸을 감싸며 종일 맴돌 것이다. 오렌지 노트는 과즙미가 넘치고 설탕이 들어 있지 않다. 비터 오렌지와 블러드 오렌지도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낸다. 향수인지 오렌지주스인지 헷갈릴 때쯤 쌉싸름한 향을 부드럽게 감싸는 재스민과 알싸한 제라늄 향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샤워 젤 중에 가장 상쾌했던 향을 상상해 보자. 거기에 10을 곱하면 벌떡 일어나 러닝을 하고 과일 스무디를 마시는 활기찬 아침을 선사해 줄 오랑쥬 상긴느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4) 비가라드 꽁상트레

-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 Bigarade Concentree by 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
- 비터오렌지 럭셔리
-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 장클로드 엘레나는 수십 년의 조향사 경력을 가진 빛나는 프레데릭 말이 처음 선보인 향수 컬렉션 열두 개 중 세 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비가라드 꽁상트레는 그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콜로뉴 비가라드를 좀 더 강렬하게 발전시킨 버전으로, 집 담벼락 너머에 던디 마멀레이드 공장이 돌아가는 것처럼 비터 오렌지의 진한 향이 느껴진다. 콜로뉴와 꽁상트레 둘 다 비터 오렌지의 쌉싸름함이 도드라지지만, 장미와 우디 노트가 은은하게 감싸준다. 꽁트레가 지속력이 좀 더 긴 편이나 다른 계열 향수의 꽁트레 지속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향수에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소비자를 위해 완벽하게 만들어진, 하지만 여전히 지속력이 짧은 시트러스 계열 향수다.

5) 오렌지 스타

- 타우어
- Orange Star by Tauer
- 궁극의 오렌지
- 조향사 앤디 타우어
- 오렌지 스타는 앤디 타우어의 아홉 번째 향수이며 뿌리자마자 이름이 왜 오렌지 스타인지 알 수 있다. 오렌지 과즙과 말린 오렌지 껍질의 향이 동시에 느껴지고, 에센스의 향은 알라딘의 램프에서 풀려나기 전 지니처럼 밀봉된 병 안에 가득 차 있다. 앤디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연의 향을 향수에 담으려 노력했고, 시트러스 베이스에 플로럴 향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오렌지 꽃도 추가했다. 향수의 지속력을 높이기 위한 고정제로 사용되는 앰버그리스 노트는 오렌지 향을 밤새 잡아주면서도 고유의 미네랄 질감을 함께 선사한다. 통카와 바닐라 노트로 부드러워진 오렌지의 싱그럽고 달콤한 향이 자애로운 햇살처럼 내리쬔다.

6) 블러드 오렌지 앤 바질

- 4711 아쿠아 콜로니아
- Blood Orange & Basil by 4711 Acqua Colonia
- 달콤하고 향긋한 오렌지와 뛰어난 가성비
- 조향사 알렉산드라 칼레
- 블러드 오렌지 앤 바질은 살결에 뿌리면 금방 사라지지만 코튼 벨벳 웃옷에서는 6시간 동안이나 남아 있다. 다른 허벌 시트러스 콜로뉴에 비해 좀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머스크 노트가 감싸 오래도록 붙잡아준다. 4711은 200년 동안 가족이 소유한 잠든 거인이었다. 1991년에 깨어나 보니 조말론의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이 있었다. '아니 잠깐,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콜로뉴 마스터라고, 이만한 향수는 반의반 가격이면 만들 수 있잖아?‘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은 뮬러 & 비르츠가 소유하고 있고, 훌륭한 가치를 지닌 데다 모두 창의적인 구성을 자랑하는 향수 컬렉션을 선보인다. 달콤한 설탕 가루를 뿌린 오렌지와 손으로 자른 바질 잎이 나무 그릇에 담겨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놓여 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 벨벳 웃옷에는 과즙이 가득한 온기가 감돈다.

7) 블러드 오렌지

- 셰이 앤 블루
- Blood Oranges by Shay & Blue
- 붉게 물든 블러드 오렌지빛 노을
- 조향사 줄리 마세
- 과즙이 가득한 오렌지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을 때 달콤한 맛보다 먼저 다가오는 상큼한 쌉쌀함이 좋다면, 셰이 앤 블루의 블러드 오렌지가 선사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어쩐지 그 오렌지는 라즈베리와 비슷한 베리 노트 기미가 있어 무더운 여름에는 이것보다 나은 향수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시트러스 노트는 우리네 인간처럼 금방 기운이 빠져 날아가는 습관이 있고, 가죽 향이 나는 우드 노트가 사라진 오렌지 향기를 대신해 자리 잡는다. 거기에 앰버 노트도 힘을 보태 따스하고 긴 여운이 남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전 옅은 노란색으로 부드럽게 희미해지는 붉은 노을 같은 마지막을 선사한다. 더운 날 뿌리면 향기가 더 짙어지고 더 좋아진다. 그러니 블러드 오렌지를 뿌리고 관능미를 느껴보자.

8) 디 오렌지 트리

- 4160 튜즈데이즈
- THE ORANGE TREE by 4160 Tuesdays
- 햇살 위를 걷는 기분
- 조향사 사라 매카트니
- 디 오렌지 트리는 이름 그대로 오렌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 같다. 오렌지 꽃잎이 종이꽃가루처럼 흩날리며 살며시 내려앉고, 푸른 하늘과 충만한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생생한 활력이 넘치는 오렌지와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싱그러운 초록빛 잎사귀는 당장이라도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챙겨 강가로 소풍을 나가고 싶게 만든다. 그 갈망은 온종일 주위를 맴돌며 점점 더 강해져 결국 현실을 벗어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나 C.S. 루이스가 만든 신비한 세계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상큼하고 톡 쏘는 프루티 노트에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껍질과 갈증을 해소해 주는 과즙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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